한 달에 한 번, 열두 번의 만남을 약속하며 시작했던 차 자리였다. 사전에 차 자리의 방향과 성격을 정하기 위해 두번의 모임이 있었다. 원행 스님과 관봉 선생 부부, 그리고 한 선생 부부가 모였다. 이후 필자와 사진작가가 합류해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함께 차를 마시고, 고완을 감상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번 차 자리는 열두 번의 만남을 마무리 짓는 동시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자리이다. 원행 스님은 ⌜차 자리에는 아취가 있어야 된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돈과 권력에 얽매여 영혼 없이 사는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스님의 차 자리에서는 골동품을 쉽게 보거나 만지게 된다. 박물관 진열장 속에 있어야 될 것 같은 것들이 차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다. ⌜모든 기물은 목적에 맞게 사용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무리 오래되고 귀한것들이라도 무심하게 쓴다. 옆에서 잘못해서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지만 귀함을 아는 만큼 조심해서 사용하면 된다며 거리낌 없이 옛것들을 사용한다. 단순히 옛것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옛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골동 애호가가 아닐까.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즐길 줄 알면 그 사람이 고수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나는 내 일을 즐기고 있는가?